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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별일없이 산다 14

오늘 마지막으로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을 보고 왔다.

마지막이라 전리품으로 클라우디아 아바도 + 베를린 필하모니 공연 녹음 모음집도 사왔다. 2010년에 한 바흐의 매트호이져 패숑 DVD도 사왔음. 총 160유로 정도인데 공연 3개 볼 수 있는 값이다. CD가 15장에 DVD 한장이긴 하지만 비싸기도 더럽게 비싸네.

지난 일년 동안 그나마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 건 베를린 필을 비롯한 클래식 공연이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다시 돌아오겠다. 진짜다. 진짜 돌아온다. 집 밖보다 집 안이 더 춥고, 날씨도 구리고, 음식 문화도 구리지만 돌아온다. 베를린필과 빈필 때문에 돌아올거다.

...근데 뉴질랜드도 만날 다시 간다고 하고 못 가고 있다-.ㅠ

 

공연도 다 봤고, 집도 없고, 통장도 해지했고, 돈도 없고, 가진 물건도 없으니 베를린 생활은 사실상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내일 저녁에 취리히로 출발한다. 스위스와 남부 독일 알프스로 한달간 여행을 가고 7월 초에 와서 길어봐야 한 열흘 있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가니 여직 안한 관광도 아마 7월 초에 와서 할 예정이다. 내가 관광을 해봤자 그 내용이 뻔하지만. 요며칠 우울하기도 하고 싱숭생숭 했는데 (우울한거야 그렇다치고, 싱숭생숭한 것은) 베를린 생활 정리 = 한국으로 돌아간다로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한국에 가는 게 왜 싱숭생숭 하냐면- 이유야 많다.

대표적으로다가, 봉춘아 너네 왜 태오피디는 대기발령 안 시키냐? 인터뷰도 했좌나? 파업을 제일 많이 알리는 역할을 한 건 사실 무한도전이쥐. 그리고 너네 홍보실이 태오피디가 이런말 했대요~ 했을 때 바로 아닌데? 아닌데? 했잖아? 그거 되게 싫었을텐데 말입니다. 별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대기발령 조치가 아니라 너무 티나는 거라고 생각한다옹. 유치한 건 맞지 뭐.

회사 말아먹는 사장이 사장이랍시고... 맹자님이 그러셨어. 왕도 왕다워야 왕 대접을 해준다고. (직역 : 왕을 죽인 게 아니라 그저 일개 찌질이를 죽였을 뿐. 왕노릇을 못하는 놈은 왕이 아니다.)

 

지난 일년 동안 한쿡, 외쿡인이 공통적으로 나에게 자주 한 말 : 넌 한쿡(아시아) 사람 같지가 않아. 외쿡에서 사는 게 더 편하지 않아?

그래서 고민 끝에 드디어 자아를 찾았다. : 본좌는 조선 사람이니라. 근데 외쿡에서 사는 게 더 편한 건 맞다. 자아도 찾았겠다 조선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겠구먼. 김붕도씨 부적을 훔쳐야겠다. 근데 내가 돌아가야 할 시대가 숙종대가 아니라는 게 문제. 그래도 송시열이 있으니 가게 되면 송시열 덕질을 하면 될테니 심심하진 않겠구먼.

 

어쨌든 한국 가면 공부를 빙자한 덕질을 아주 파란만장하게 할 계획이지만 이게 제대로 되려나. 덕질을 하려고 하면 항상 돈문제가 걸린단 말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