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일없이 산다

친구를 위한 별볼일 없는 외쿡 스타 타령

커뮤니티 활동을 안하니 글리가 7주나 휴방을 하는 걸 거의 마지막까지 몰랐다. 하긴 이 소식도 디씨-기타 미드갤에서 봤는데 간만에 커뮤니티에 가서 건진거라고는 휴방정보와 글리 감상에 넘쳐나는 외모비하, 인종차별, 게이비하... 차라리 7주 동안 왜 안나오냐며 혼자 미치는 게 낫지(라고 해봐야 구글링해서 결국 알았겠지). 여하간에 멘탈리스트와 빅뱅이론만 보기엔 심심했던 나는 유튜브에서 배우들 인터뷰를 보기 시작했다. 보다보니 인터뷰를 골라보게 됐는데 글리에서 커트 험멜 역의 크리스 코퍼와 블레인 앤더슨 역의 대런 크리스로 좁혀지더라. 이유는 뭐, 간단하다. 이 두 사람이 말을 잘한다. 그냥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말 같은 말을 한다.

특히 크리스 코퍼는 '이 인간 90년 생 맞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냥 말을 잘하고 똑똑하고 그런게 아니라 21살 남자애한테서 '현명함'의 냄새가 난다. 헐... 인간들아,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건 이럴 때 느끼는 거다. 다른 사람 돈에 침 흘리지 말고 이런 걸 좀 보라고.
크리스 코퍼는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자기 고향과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Big Fuck을 날리고있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그냥 참고 살거나 그냥 잊어버리거나 그냥 괴로워하는데, 그게 운빨이 맞았든 뭐든 크리스 코퍼는 복수에 환장한 사람처럼 굴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힘내라, 크리스 코퍼.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지금은 그 과정이고 스타트가 좋았으니 결과도 좋을 거야. 환경 때문에 빨리 나이가 들 수밖에 없었던 건 슬픈 일이지만 부디 그현명함 잃지 말고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그리고 여기부터는 친구의 리퀘스트에 의한 대런 크리스 소개.
대런 크리스는 처음에 얼굴을 봤을 때 뭔가 촉이 오긴 왔다. '어, 저거 내가 아는 표정이다.' 처음엔 바보(백치)인가 했는데 아무리 봐도 바보얼굴은 아니더라고. 그리고 이번에 인터뷰 좀 찾아보면서 알게 됐다. 이 인간 행복하구나. 정말 제대로 된 보통 사람이구나. 그리고 난 크리스 코퍼 때보다 이 대런 크리스한테 더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예전에 내 친구가 자기 학교 후배 중에 스폰지같은 애가 있다고 했다. 뭐든 빨아들이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다고, 나는 대런 크리스가 그런 인간이 아닌가 한다.  나이(87년 생)에 맞으면서도 인간이 제대로 됐어. 좋은 인간, 혹은 현명한 인간이 되는 길을 가고 있는 걸 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대런 크리스가 글리에서 '당당하고 행복한 게이 청소년' 캐릭터를 맡았는데, 이 캐릭터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거였다. 게이무브먼트 뿐 아니라 정말 게이 청소년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더란 말이다. 많은 스트레이트 배우들이 게이 캐릭터를 맡으면 일단 '나는 게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굉장히 애를 쓴다. 스트레이트로 보이고 싶어하는 그 간절함이 좀 안쓰러울 정도다. 대런 크리스는 처음엔 커밍아웃을 안 했지만 곧 스트레이트라고 거의 강제로 커밍아웃을 했어야 했다. 처음엔 글리와 자신의 캐릭터가 '네가 뭐든(게이든 스트레이트든 바이든 덕후든 빠순이든 뭐든 간에) 너는 괜찮은 인간이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니 굳이스트레이트를 밝힐 생각이 없었으나, 글리에 첫 출연을 하자마자 대박이 터지면서 양쪽 진영에서 하도 '그래서 넌 성정체성이 뭐야'라고 볶아대기도 했고 배우 본인도 '스트레이트 남자가 게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전혀 꺼리길 것이 없'고 블레인이라는 캐릭터는 성 정체성을떠나서 정말 좋은 캐릭터라는 걸 알리는데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스트레이트라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게이무브먼트를 돕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전혀 거침이 없다. 물론 이러하고 저러한 이유로 게이 좋아하는 빠순이와 게이 커뮤니티에서 대런 크리스가 게이였으면 좋아죽겠다는 걸 계속 어필하고 있지만--;; 스타님, 괜찮은 스트레이트 남자로 사는 것도 힘들어 보이네여. 이거저거 귀찮으면 월컴투 무성애자 월드. 여기 편해용.
여하간에 그 외에도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을 할 때도 그렇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다. 인간이 안정적이고 여유가 있어.   
 
내가 만나거나 본 '안정적이고 여유있는 행복한 사람'은 대부분 나이가 많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 지휘가 안정되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고 자아가 온전히 확립되면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행복한 사람의 얼굴이 되는 거다. 그래서 그냥 막 행복한 어린애(혹은 백치)의 얼굴과 나이 들어 행복한 사람의 얼굴이 다른 거다. 전자는 본인만 행복하면 장땡이고, 후자는 주변 사람과 환경을 같이 챙긴다. 본인이 행복하니 그런 여유도 나오는 거고 그런 이유로 어른이 행복하면 현명할 가능성도 크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사랑도 받지=_= 그야 사랑을 주니까 받는 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누가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을 싫어하겠어.
대런 크리스는 그 사이쯤으로 보인다. 대런 크리스가 행복한 이유는 사회적 지휘가 안정되서 오는 자신감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고 재밌게 하고 있고, 그걸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본인이 보기에 재밌고 하면서 즐거우니까 또 좋은... 그런 종류의 자신감에서 오는 것 같다. 그니까 유아적인 순수한 즐거움과 행복함도 갖고 있고, 현실적 자신의 위치도 알고 하는 일도 알고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서 오는 행복도 갖고 있다는 거지. 본인도 말했지만 '내가 그걸 한다고 잘한다는 뜻은 아님'을 알고 있다.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 배우를 하고 싶지만(이미 데뷔도 나름 성공적으로 했지만) 자기의 노래와 춤이 빅뮤지컬 스타가 될 수 없는 실력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 원하는게 '빅뮤지컬 스타님'이 아니니까. 물론 성공하면 좋으니까 계속 노력도 할 거지만, 성공 못해도 즐거우니까 괜찮다는 거여. 
 
글리랑 콘서트를 보면서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그런 부분에서 오는 거였다. 분명히 노래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닌데 왜 잘하는 것처럼 보이냐는 거지. 내가 빠순이라서? 아직 아니거등? 뭐냐고 저 색히는. 뭔가 이상해. 무대 매너는 왜(어떻게) 좋은 거야?  답은 간단했는데 본인이 저걸 정말 즐기고 있다. 덩치가 작아도 인간이 워낙 에너제틱한데다가 동작이 크니까 춤도 실력보다 훨씬 잘추는 것처럼 보이고 노래도 마찬가지, 무대를 순수하게 즐기고 있으니 무대 매너가 좋아보이는 거다. 원래 즐기는 성실한 놈 못 이기는 법이다. 사실 에너제틱한 것도 지가 좋아하는 일 하니까 동력이 계속 나오는 거지. 이건 끼가 있다거나 혹은 그쪽에 대해서 그냥 알고 있는 거(천재)랑은 좀 다르다. 마이클 잭슨은 5살 때 무대에 올랐을 때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냥 알겠더란다. <-요게 천재고, 끼는 본인이 즐기고 말고를 떠나서(재능도 떠나서) 그냥 있는 거다. 똘끼 같은 거 있잖수. 이건 성격도 아니고 뇌에 생기는 문제 같은 거라고 해야하나;; 성격이랑도 또 다르거덩. 대런 크리스는 양쪽 다 아니고 그냥 노력파+즐거움이 승화 된 모습을 보인다. 이것도 신기한 게 보통 노력파는 많이 찌들어있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하는 노력란 게 굉장히 피곤한 일이니까. 근데 얘는 왜 계속 즐거운 거냐고!!! 글리로 성공하기 전부터 애가 즐겁고 행복하더라니까!!! 아... 또 상대적 박탈감 orz
 
사실 이거에 대한 답도 안다. 대런 크리스는 일단 가족 관계가 좋아보인다. 정신적 안정감은 대부분의 경우 거기서 온다. 청소년기 때 부모님과 불화가 있었던 사람도 결혼하고 자기 가정을 제대로 행복하게 꾸미게 되면(혹은 좋은 연애를 하거나, 여하간 다른 인간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정신적으로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대런 크리스는 그냥 그걸 안고 태어난 거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아도 대런 크리스가 중산층 집안에 태어나서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압박은 없고 믿음은 있는 그런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게 보인다. 그리고 이것저것 한다고 배우고 다니며 주변에 사람도 많았을 거다. 환경적으로 다양한 사람이 많았으니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주변에 어른이 부모 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럿이 있으니 좋은 롤모델도 많아지는 거지. 대런 크리스의 인생이 평탄대로였을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문제가 있었어도 치유를 할 공간과 문제를 나눌 사람이 거기 있었을 거라는 거지. 단순하게 비교를 해도 크리스 코퍼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었지만 가족 이외에는 기댈 곳이나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는 촌동네에서 따돌림을 받으며 자랐다. 대런 크리스는 청소년기가 성장이었겠지만 크리스 코퍼에게는 '서바이벌'이었을 거라는 거다. 크리스 코퍼나 대런 크리스나 다른 걸 다 떠나서 굉장히 '좋은 20대 남자'인데 두 사람의 성장 배경에서 나오는 성격적 차이가 얼굴(표정)에서 보인다는 게 참 재밌기도 하고 거시기 하기도 하고 그르타. 하긴 크리스 코퍼도 타고난 품성은 긍정적이어 보이긴 한다. 어떤 시기가 지나면 본래 성격이 나올 거임. 

 


취향으로 따지면 크리스 코퍼나 대런 크리스나 겉멋이 없어서 좋다. 두 사람 평소 모습으로 유추되는 것도 꽤 마음에 드는데(왜 유추냐면 이것도 인터뷰만 본거라서. 직사 및 파파라치 샷은 안 봄), 크리스 코퍼는 그냥 티셔츠나 남방에 청바지 타입이다. 아빠 뭐하세요의 알이 생각나서 웃었네. 깔끔하지만 패셔너블과는 거리가 있는 그런 모습. 스타님한테는 안 어울리지도 모르지만 글쟁이한테는 잘 어울려. 좋아. 아주 좋아. 대런 크리스는 자기 말에 의하면 거지처럼 하고 다닌단다. 엄청난 곱슬머리에 수염도 안 깍고 냄새 날 것 같은 차림새라고 말하더만, 차는 큰 벤츠. 헹, 부자놈들 따위. 
덧붙여 핀 역의 코리 몬테이스도 겉멋이 별로 없는 편이다. 코리 몬테이스는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이 대박 성공한 부분은 빼고) 약간 미묘한 동질감이 든다. 성공에 대한 반응도 그렇고, 굉장히 긍정적이고 나이에 맞지 않게 밝고 어려보이는 얼굴 밑에 미묘하게 가라 앉아있는 감정선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동안 부재했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것에 대해 그냥 being adult인가 acting adult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거 무슨 소린지, 무슨 감정으로 이런 말 하는지 나는 100% 이해하거덩. 화이팅이다, 구질구질 인생들과 가난뱅이들이여.

어쨌든 대런 크리스를 보면 드디어 20대 보통 인간을 찾았다는 기쁨(혹은 희망)과 함께 미묘한 질투, 위에 말했던 상대적 박탈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지금 얘 빠순이가 되서 좋아보이는 게 아닐까?하는 의문도 계속 갖고 있다. 이건 물론 대런 크리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지. 내 문제! 행복하지 않은 내가 문제야!! (음?) 도대체가 현대인 중에서 자기 일을 저렇게 즐기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 뿐더러 그걸 잘하든 못하든 즐겁게 하는 것도 그렇고(솔직히 못하진 않지. 잘한다. 정확히는 성장하는 중.), 행복의 기준이 자기 내부에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은 사람이라니. 안돼orz 너무 부러워. 내가 누구를 부러워하다니=_= 이건 일전에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이제 너(내 친구, 너 말이다)도 같이 부러워 하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