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일없이 산다

별일없이 하는 감정 문화 비교

나는 독일(유럽문화권)과 한국이 감정을 소비하는 방식이 다른 점이 개인주의(개인) 와 공동체라는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이라고 인간관계가 다르진 않다. 인간사회라는 게 다 다르면서도 기본적인 건 굉장히 비슷해서, 한국에서 이상한 행동이라고 생각 되는 건 여기서도 이상한 행동이다. 집주인, 친구, 이웃, 동료, 가족 관계 등등 대부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이를테면 내가 집을 구했던 집 주인은 나랑 비슷한 연배의 사람이었는데 집을 빌려주고 빌리는데에 굉장히 느슨한 태도였다. 내가 입주를 할 때까지 이메일과 스카이프로만 말했을 뿐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그쪽도 급하고 나도 급하긴 했지만 이건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그다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반면 내 친구의 집 주인은 '이러저러한 걸 바꾸기로 했음'이라고 편지로 통보를 하고 그 통보에 대해 이견이 있으면 변호사 대동하고 이야기 하자라고 써놓은 게 아닌가.  물론 이런 짓을 하는 집주인도 흔치 않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게 해도 법에 저촉되지는 않으나 빈정을 상하게 만드는' 태도이기 때문에 '뭐냐고 이건' 이런 반응을 끌어낸다는 거지. 
가족관계도 의외로 비슷하다. 한국에 비해 결속력이 약해보이기도 하는데, 알맹이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여기는 애들이 성인이 되면 대부분 독립을 하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듯 금전적 독립을 한 자식들한테 이래라 저래라하면서 애를 콘트롤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물론 여기서도 나이가 들었는데도 부모랑 같이 사는 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부모말을 잘 듣는다. 힘의 비례는 어딜 가나 똑같다. 인간은 누군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어떻게든-어떤 방식으로든 영향력을 주고 받으니까. 참고로 여기 애들이 독립했을 때 안정적으로 보이는 건 부모와 자식 사이에 행정이 들아가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부모가 하는 일을 여기선 나라가 하는 거지. 의료와 교육, 실업 상태일 때 돈 받는 것 등등. 여기에 압박이 없는 건 아닌데, 부모도 아닌 존재(라고도 할수없는 행정이라는 것)에 돈을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니까 기본적인 건 매우 비슷하지만 이걸 어떻게 표현하는가와 그 표현의 기준이 다르다. 
유럽권 문화엔 개인주의가 한국에 비해 뿌리가 깊어서 인간관계에 '남한테 피해주기 싫고, 나도 피해받기 싫다'라는 감정(혹은 논리)가 기저에 깔린다. 그니까 내가 좀 우울하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다고 해서 만날 친구들 만나서 같은 내용으로 하소연하고 떠드는 짓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친구의 시간을 뺏는 것'이라 안한다-혹은 못한다가 되는 거다. 애초에 감정을 공유하지도 않지만 백날천날 똑같은 문제로 하소연을 해도 친구가 '여기까지. 이제 고만해'하진 않는다. 이건 우리나라랑 같은데 다른 점은 여기선 이걸 '예의있게 군다 being polite'라고 표현하는 게 다른거지. 한국의 경우엔 친구의 마음을 상하지 않기 위해 선을 긋고, 선을 긋는 위치도 '눈치'로 판단을 해야하는데, 여긴 따로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나름대로 기준이 있다. 같은 문제로 한번 두번 뭐 이런식으로... 말을 안하는 건 비슷하지. 
뒷다마? 분명히 깔거다. 깐다. 정확히는 까는 사람이 있고 안 까는 사람이 있는데 내 주변엔 뒷다마 까는 사람이 별로 없고, 뒷이야기를 하더라도 '사실'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걔가 이러이러 했다. 그리고 거기서 끝. 거기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좀처럼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 통보를 해대는 집주인은 한국에서라면 뒷다마의 꺼리로 세입자와 세입자 주변인들에게 대차게 까일테지만, 여기는 그런게 별로없다. 잘한 짓이라고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불법도 아니고 딱히 따라다니면서 욕할만한 행동도 아니라는 거다. 거기에 뒷다마 혹은 하소연에 대한 기준도 좀 다르다. 
내가 인간관계로 똑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외쿡인의 반응 : 걔는 너를 모른다-에서 끝나는 반면, 한국 사람에게서는 그 사람 피해의식있는 거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 너한테 한 짓은 잘 못한 거지만 그 사람도 굉장히 힘들었나보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유럽 문화는 개인의 감정은 니가 알아서 해야할 문제고요 그래서 사실을 공유하고 문제 해결(혹은 결론 도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한국 사람들은 모두가 둘러앉아 감정을 풀어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사회적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해소한다. 한국 미디어가 눈물로 가득찬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화난 사람의 감정을 풀어줘야 하는데 그 방법이 감정을 소비하는데 있는 것 뿐. (왜 '감정 소비'냐면 이제는 더이상 실제로 이게 도움이 되지 않고, 분출되는 감정이 다시 자기한테 돌아와서 독이 되고 있기 때문. 소리 지르고 진상부려서 기분이 풀리고 이긴 것같지, 녀러분 그거 어디 안 갑니다. 다 자기한테 쌓여요.)
지금 더 좋은 예가 생각나지 않는데, 왕따문제를 다룬 미쿡 드라마 글리와 한쿡-일본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글리나 이쪽 미디어에서 왕따 문제가 나오면 '씨발, 그래서 뭐, 나는 나대로 당당하게 살거야'로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엔 (꽃보다 남자 뿐 아니라 그 비슷한 이야기를 다룰 때) 소수에 속했던 사람이 다수 즉, 공동체에 속하면서 왕따문제를 해결한다. 그게 사회적 지휘 상승이든 뭐든 어쨌든 저쪽은 개인의 역량, 이쪽은 다수로 편입되야 한다는 거지. 
 
나는 이게 어느 쪽은 이성, 다른 쪽은 감성으로 문제 해결을 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거는 문제 해결을 위한 '현상'일 뿐이다. 애초에 어떤 문제 해결 방식을 선택한 거 자체가 논리적인 선택(집단 이성이든 뭐든)이 아닌가 한다. 얘네는 전자로 해야 감정이 풀리는 거고, 우리는 뒷쪽으로 해야 감정이 풀리니까(그런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니까) 그걸 선택한 거지. 어떤 게 좋다 나쁘다 할 수도 없다. 
유럽문화의 경우 이야기를 해봐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그냥 버려, 노력해도 안됐으니 마는 거지하는 쪽으로 문제를 접고, 한국문화는 어차피 안되는 거 감정해소만이라도-라는 태도로 정작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감정만 풀어버리고 진짜 문제는 남겨두는 쪽이라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특히 나처럼 인생에 문제가 많았던 사람은 감정만 풀어줘봐야 현실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과부하가 걸려서 결국은 빵터지는 된거고 얘네의 경우 문제는 해결됐는데 쌓인 감정이 갈데가 없어 우울증이 되는 경우가 많다. 거 왜 헐리우드 영화 보면 그런 거 있지 않나. 가족이나 무언가 중요한 걸 잃었는데 문제 해결(대체품 발견)하면 해피엔딩이 되는 좀처럼 우리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거. 근데 얘네도 그렇게 해서 감정이 해소됐다고 믿는 것일 뿐 화는 어디 가지 않는다네. 흠, 이러거나 저러거나 우울증 걸리는 게 다르지 않구먼.


기준은, 이를테면 '대놓고 말한다'는 것이 굉장히 다르다. 유럽 문화권에선 사적인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공적인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지. 이 나라에서 개인의 외모, 가정사, 성격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건 그게 부모-자식 관계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무례하고 못할 짓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가능하고, 한국에서는 같은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도 공적인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게 함부로 말할 게 아니라는 거다. (한국이나 외쿡이나 남의 일하는 거 갖고 왈가왈부하는 말 많은 게 주로 '손님'들이나 인터넷으로 남의 작업물 갖고 왈가왈부 말이 많은 아마추어들이라는 건 공통점임. ㅇㅇ 여기서 떨거지 저기서도 떨거지. 모두가 떨거지.)

한국문화가 조선시대 때부터 공적인 일에 말을 못했던 건 아니다. 조선사회는 공사 모두 직설적으로 보일 때가 많거든. 아마 일제하고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이 문화가 정착된게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저색히 친일파' 이런 말을 못하는 분위기였다는 거지. 하긴 독재자의 지지자 아니었던 사람없고 친일파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있나. (혹은 대부분 그에 대해 침묵으로 동의했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글치. 반면 여기는 너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치 지지자였다!!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런 나라 없다. 어떤 이유로 그런 정책을 하기로 결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 
당장 나꼼수나 정치판에 대한 비판을 봐도 성향차가 확실히 보인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정치인이 어떻게 일을 하는가보다는 성향이나 인간됨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여기는? 여기도 예전엔 많이 그랬는데 이제는 일이나 똑바로 해라는 분위기인 거고. 이것도 뭐가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정치인은 그냥 행정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맞고, 일종의 롤모델로서 뭔가를 보여줘야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한마디로 그릇이 커야해. 일도 잘하고, 도덕적으로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이란 직업도 마찬가지다. 선생이 그냥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이런 사고방식에서 생기는 간극(직업인과 사회적 롤모델)은 양쪽 사회에서 다 문제가 된다. 청소년의 따돌림과 폭력, 자살 문제가 자꾸 두드러지는데 이걸 어떻게 손대야 할지, 누가 손대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거지. 선생이 하려니 선생질 하는 게 무슨 죄며, 부모가 하려니 부모가 슈퍼맨-슈퍼우먼도 아니고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면서 애새끼까지 단도리하려니 시간도 없고 정력도 없고, 행정적으로 사회복지사나 상담사를 붙이자니 돈 문제에 그걸 실행하는데도 시간이 들고, 애들은 또 무슨 죄야. 옛날에는 사회가 작은 커뮤니티였기 때문에 부모만 애를 키우지 않고 공통체에서 애를 본 셈이었다. 애들에게 모델이 많았고, 애를 보는 눈도 많았다는 거지. 규칙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써놓지 않아도(근데 의외로 그런 규칙 같은 거 써 놓기도 했다. 이황이 정리한 성학십도는 무려 왕한테 '너님 잘 크려면 이렇게 해야함'하고 행동방식을 포함한 유교 이론을 정리해서 표로 그려 준거다. 그 외에도 한다하는 선비들은 이런 거 많이 했다. 옛날 선비는 선생이었으니까 당연함) 그 공동체 안의 논리 안에서 애를 키우니까 문제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문제가 크거나 막나가진 않았다는 거다. 다른 거 다 접어두고 도대체 10대가 자살하는 사회라는 게 말이되냐고.  <-이건 한국 사회만 말한 게 아니다. 한국이 좀 더 심하긴 하지만, 여기도 얼마전에 네오나치가 테러를 일으켰다. 극우 노인네가 일을 저지른 게 아니라 젊은 애들이 그짓을 했당께. 미쿡에서도 사회적 소수자 청소년이 자꾸 자살을 하고 있고.

정치인이 행정일만 요구하는 게 이성적이고, 정치인한테 사회적인 롤모델만 요구하는 게 감성적인 게 아니다. 내 생각엔 애초에 분리하면 안되는 개념이 아니었나 싶다. 양쪽 다 실질적으로 필요한 거잖아. 그리고 발란스가 안 맞으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문제가 생기는 거지. 많은 직업이 직업적 능력과 사회적 위치 모두 중요한데, 여기에 그 기준을 어디다 대는가가 문화권마다 다르다. 직업과 직업에 따라 보여줘야 하는 책임이나 의무 혹은 도덕심에 대해서는 유럽 사회나 한국이나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여기는 자기 식대로 대안을 찾는데, 우리나라는 남의 나라-그것도 같은 문화권이 아닌 생판 다른 문화권, 그냥 걔네가 강대국이라 좋아보여 수입한 대안으로 때려박으니 그게 되겠어? 정신분열 걸리는 것도 당연한거다. 그럼 늦더라도 다시 자기식대로 문제 해결을 찾으려고 해야하는데 한동안은 그것도 못할 것 같고-정확히는 할 생각이 없어보이고, 이건 밑도 끝도 없이 보수든 진보든 모두가 이성이 더 좋은 거라는 식으로 이분법을 해대니 뭐가 되겠냐고요.

뭔가 되게 길고, 말하면서도 꼬인 것 같아서 한줄 요약 : 
이성과 감성은 같이 가는 거임. 비교도 하지 말고 대립시켜도 안되는 거임. 좌뇌 우뇌 분리시키면 제대로 살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죽습니다요.
그리고 유럽 문화 좀 그만 빨아=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