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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없이 산다

글리

덕질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밖에 영하 20도 쯤 되서 나가지도 못한다. 집에서 계속 덕질 중.
글리 3시즌을 받아보다가 마이클 잭슨 에피소드를 보고 못 참고 2시즌을 또 죄다 받아서 봤다. 사실 가끔 가는 (단 하나의) 커뮤니티 몇마디 끄적여놓기는 했지만, 거기에서 덕질을 활짝 펼치기에는 내가 좀 부끄러움을 타지.

글리는 쌀쿡드라마로 미쿡의 오하이오-한 마디로 촌동네 공립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싸 또는 루저들의 이야기로 뮤지컬 형식이다.
Glee는 합창단을 뜻하는데, 이게 쌀쿡 고삐리들에게 그닥 인기 있는 과외활동이 아니다. 노래를 해도 롹밴드나 힙합을 해야지, 단체로 서서 흔들거리는 합창이라니. 그나마 여자라면 좀 괜찮은데 남자가 하면 그냥 게이가 된다. 글리 선생님한테도 게이라고 놀리는 현실이라서 놀랐음. 무엇보다 이건 영국에서도 좀 그런 모냥이라 더욱 놀라웠슴돠.
여튼. 우리나라에서야 고등학교 때 인기 있으려면 1. 외모, 2. 성적인데 쌀쿡은 1. 외모, 2. 과외활동(남자는 남자다운 스포츠, 여자는 치어리더) 순서 정도 되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는 글리에 있는 애들이 대체로 공부를 잘하고, 글리에서 활동하던 애들이 아이비리그에도 많이 간다더구먼. 아이비리그에 글리클럽도 많고, 고등학교에서 글리클럽활동하던 애들이 계속하기도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고삐리 때 글리클럽에 있으면 루~져. (참고로 초딩 때는 야구, 중딩 때는 농구, 고딩 때는 미식축구가 일종의 공식이라던데 지금도 그런가 모르겠다.)
게다가 공립학교라뇨. 워싱턴이나 뉴욕에 있는 공립학교에 다니다가 언제 총맞을지 모른다는 인식이 있는 나라 아닌가. 그러니 중산층은 어떻게 해서든 애들을 사립학교로 보낸다. 그래도 이 촌구석 학교는 애들이 총은 안 들고 다니네, 따돌림은 직접 몸으로 합니다. 이 촌구석 콤플렉스는 어느 나라를 가나 비슷해서, 아무리 유서가 깊은 중소도시라고 하더라도 젊은 애들은 여기서 못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하는 거지. 어떤 맥락에서는 한국의 '지잡대 정서'랑도 비슷하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도 지방, 지방에서도 공립학교를 다니는 서민 부모님을 두고 있는 소수자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수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편부모, 입양, 게이, 장애, 유색인종, 비만, 10대 임신-출산, 낮은 지능, 가난까지. 글리클럽 멤버 아이들뿐 아니라 선생도 다 소수자다. 교장은 인도계고, 악역 비슷하게 나오는 치어리더 선생은 다운장애를 갖고 있는 언니와 부모없이 청소년기를 보냈고, 글리클럽 선생님이 그나마 평범하게 그냥저냥 살아가는 이혼남 정도 되고, 이 글리클럽 선생님이랑 사귀려고 하는 상담선생님은 강박장애다. 진짜 골고루들 하네 ㅋㅋㅋ

이 드라마를 두고 애들이 캐릭터가 죄다 막장이네 어쩌네 하는데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나면 걔들이 왜 그렇게 찌질하고 이기적인지 이해가 된다. 원래도 고삐리는 전두엽에 '나' 이 외에는 없는 종자들인데, 이런 것들이 어떻게든 스타가 되고 싶어서 버둥거리는 꼴이 어떻게 교양이 있겠나. 교양도 돈이 있고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떠는 거지. 학교에서도 왕따 당하는 것들이 글리클럽에 들어와서도 서로 잘 지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사귀고(밖으로 나가봐야 선택의 여지 없음 ㅋㅋ), 그러면서도 서로 이기지 못해서 안달이니 막장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게 진짜 막장이냐 하면 그렇진 않거덩요.
어제 같이 사는 친구랑 이야기를 하는데 '한국은 10대 커플이 임신을 하면 여자애는 학교에서 짤리는데 남자애는 안 짤려'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거 거지같네'라고 하더라. 물론 거지같지. 막장이라는 건 한국 현실이 막장이고요, 글리에서 임신한 여자애는 최소한 학교에서 쫓겨나진 않는다. 다만 같은 학생들에게 낙인이 찍히고 왕따가 되긴 하지만=_=;;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이래저래 사고도 치고, 삽질도 있는대로 하고, 여기저기 피해를 입히고 다니지만 그래도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거지. 그리고 글리는 대체로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찌질해도 괜찮고, 삽질해도 괜찮고, 이기적이어도 괜찮고, 싸워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다. 물론 그냥 괜찮은 건 아니다. 그걸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그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좀 더 나답게 당당하게 살아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런 부분에서만 괜찮다.
글리를 루저들이 성공하는 이야기로 만들면 이런 모든 설정이 우스워진다. 글리는 소수자들이 살아남는 이야기다. 그 중에 몇은 버둥거린만큼 성공할 수도 있고, 그중에 몇몇은 많이 버둥거렸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애들은 다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살아갈거다. 글리 선생님처럼 대성공은 아니더라도, 자기 고향에서 직업을 구해서 나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처럼 다들 자기의 길을 찾겠지. 양손에 가득쥐고 더 쥐지 못해서 안달하는 거를 막장이라고해도 되지만 빈손에 나뭇가지 하나라도 쥐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에는 막장이란 말을 하는게 아니죠. 이 업계에도 도덕이라는 게 있답니다. 드라마를 보려면 똑바로 엉?

글리는 뮤지컬이고, 어찌보면 당연하게 뮤지컬 특유의-이야기 빈약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솔직히 특별히 이 드라마가 끔찍하게 이야기나 구성력이 약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무엇보다 그냥 캐릭터랑 노래-퍼포먼스에 맞춰서 보면 전~혀 문제없음. 그리고 대사도 깨알같다고! 내가 이걸 보겠다고 결심한게 1시즌 초반 에피소드에 치어리더 옷을 보고 '이 옷을 만든 사람을 천재'라면서 보여줄 듯이 안 보여주고, 줄 것 같으면서도 안 준다고 하는데 진짜 그거 보고 어찌나 웃었던지. 애들이 욕하는 것도 그렇고, 출연자들의 실제 신체적 별것도 아닌 특징을 까대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웃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하는 이빨까기를 드라마에서 대놓고 해댄다. 정말이지 쓰래기같은 일상. (<-국내 빠-덕후들 커뮤니티 가면 드라마에서 나온 내용으로 돌려가며 까대고, 그런 것 때문에 막장이라며 또 까댄다. 그렇게 하면 자기 자신을 까대는 거라는 걸 알고는 있니;;;)
현재 3시즌이 진행 중인데 나름 인상적이라고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얘네도 '일단은 대학부터' 정서가 강하다는 것. 결국 죄다 학교 찾느라고 머리털이 빠진다. 재미는 건... 도대체 너네 그런 사립대를 갈 돈은 어디서 나오니. (대학학비는 졸업하고 10년 15년씩 분할상황하는 공포의 빚이라고. 아이비리그나 예술학교는 더 비싼데 예술계는 졸업하고 직업을 쉽게 찾는 직종도 아니지. 예술은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게 맞다.) 뭐 이건 그냥 하는 말이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치자.
어쨌든 요즘은 졸업반 학생들 대학 선정이 가장 중요한 이슈. 1, 2시즌에서야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게 '하고 싶어서, 꿈이라서, 성공하고 싶어서' 같은 좀 이미지에 가까운 거였지만 지금은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해야 대학지원서에 한줄이라도 더 쓸 수 있으니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난 사실 머리로는 인식하고 있지만 그 나이 때 특유의 불안감이나 간절함을 잘 몰라서 이런 부분엔 잘 감정이입이 안되고, 노래-퍼포먼스만 위주로 본다. 아, 요즘은 캐릭터랑 연애질에도. 워낙에 연애 구경을 좋아해서리 이건 어쩔 수가 없다. ㅋㅋ

케릭터는, 1시즌에서 정주던 캐릭터는 커트 아버지 정도였다. 근데 시즌 2에 블레인이 짜잔~ 3시즌 부터는 레귤러라능! 이것도 웃긴게, 커트 아버지는 완죤 조연이지만 안 찌질하고 너무나 정상적인 인간이라 좋은 거다. 이 드라마 찌질한 애들이 좋아서 보는 건데, 결국 정가는 캐릭터는 제대로 된 어른이라는 거지;;
블레인은 호모포빅 스트레이트 남자만 빼고, 스트레이트 여자, 동성애자-양성애자 언니 오빠를 다 후려잡을 캐릭터. 블레인은 '틀에 박히 게이 청소년'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커트가 (역경을 이겨내는 방법이 긍정적이라 그렇지) 좀 정형화된 게이 캐릭터다. 왜 테레비에서 좋아하는 그런 게이 캐릭터 있잖은가. 양성성을 갖고 있고, 말투나 옷이나 그런 거. 셱시전투녀 산타나도, 커트를 괴롭혔던 게이이자 호모포빅인 캐릭터도 많고 많은 정형화된 (그러면서도 잘 만들어진) 게이 캐릭터다. 무엇보다 산타나는 예쁘잖아! 예쁘고 셱시해! 흠흠, 그에 반해 블레인 캐릭터를 다른 데서 찾으려면- 한 마흔살 쯤 되서 자기의 정체성도 그렇고 자기의 주변도 그렇고 모든 걸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게이 아저씨 정도-ㅠ-? 
그리고 게이 캐릭터고 뭐고를 떠나서, 무엇보다 재능있는 고등학생이 저렇게 올바르고 사려 깊다니 말이 되나여!! 보통 저런 재능에 저런 외모에 중산층쯤 되면 페리스 정도가 이상적이지, 블레인은 너무 어른이잖여ㅠㅠ 그래도 쏠리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어ㅠㅠ 요즘 너무 핥아대서 블레인이 닳아 없어지겠다. 작정하고 건전하고 건강한 매력을 어필하겠다고 만든 캐릭터같은데, 그런 캐릭터가 실제로 이렇게 잘 먹히기는 어렵지 않나. 그럼 보통 되게 교과서적인 재미없는 캐릭터가 되는데, 그렇게 안되게 하려면 웨스트윙의 샘 시본처럼 바보를 좀 넣어주던가 해야하는데 얘는 그렇지도 않단 말이지. 이런 캐릭터 왕형님쯤 되는 콜린 퍼스의 수 많은 프린스챠밍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긴 콜린 퍼스의 프린스챠밍은 대부분 재미없고 꽉막힌(싸가지도 좀 없는) 그러나 알고보면 착한 범생이라는 설정이지. 
생각해보면 블레인은 글리 멤버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부모가 중산층인데, 결국 경제적 안정과 정서적 안정이 부합되서 나오는 매력인건가. 슬픈 현실...(음?)

음악은 전반적으로 편곡하고 퍼포먼스가 좋다. 배역과 배역 보이스에 따라 편곡을 해놔서 분위기에 상황에 이입을 하면 원곡보다 좋게 들리는 경우도 태반이다. 커트 아버지가 결혼하는 이야기에 나왔던 Merry you하고 Just the way you are 은 정말 좋았음ㅠ 한동안 글리 버젼으로만 듣고 다녔네. 그리고 원래 합창이 주는 파워가 또 다르거덩. 노래-퍼포 경험이 없던 애들은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잘하게 되니 그것도 흡족하고.
갠적으로는 마남매(마돈나, 마이클) 트리뷰트 에피가 특히 좋았다. 이야기하고도 잘 맞고, 편곡도 좋았고, 퍼폼도 좋았음. 글리 이야기 특징상 그런 걸수도 있지만 레이디 가가하고도 잘 맞고. 

금방 삭제되겠지만 맛뵈기로 3시즌의 7에피의 I kissed a girl, 8에피의 We are young.




글리, 아잉 좋아 ~.~


뱀다리.
우리나라는 지금 수영복 시위도 그렇고 그에 대한 반응도 그렇고, 그 반응에 대한 반응도 그렇고, 그 대처도 그렇고... 글리라도 보고 좀 배우쇼. 기본적인 인권 마인드랑 대상화, 무엇보다 주둥이 놀리는 것에 대한 감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주둥이 놀리는 거 하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나랑 몇달 살았던 인종이 야오이 혹은 게이 이슈가 역겹다는 묻지도 않은 의견을 내놨는데, 어떤 사람의 사적인 비디오가 유출되니 그걸 같이 보라고 틀어서 내 얼굴에 들이 밀더라능. 내 보통 이런 종자들이 대책이 없다고 하지. 씨발, 그날 내 눈깔 썩은 게 아직도 안 낫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