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끝났다. 그동안 너무 흥분상태라 힘들었다. 나 같은 경우엔 좋아함을 넘어서면 이상하게 각성 비슷한게 일어나서 (한마디로 뇌에서 뭐가 분비되서) 잠도 잘 안오고, 특히 그걸 본 직후 몇시간은 보고 있지 않아도 뇌에서 자동 재방을 해준다. 평소엔 치매 할매인데 이럴 땐 기억력도 좋아. 그래서 힘들었다. 나는 답지 않게 뇌가 팽팽 돌아가면 힘들다. 게다가 요즘엔 인풋이 많아서 더 정신이 없었다.
여튼간에!
이런 드라마를 만나서 영광입니다.
드라마는 많은 사람이 만든다. 눈에 보이는 곳에 배우가 있고, 많이 거론 되는 사람 중에 작가와 연출자가 있다. 실제로 이 세가지 직업이 이야기를 꽃피운다고 할수도 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보통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한 몸으로 움직일 때 나온다. 연출은 연출자의 센스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고, 이야기는 작가의 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모든 게 맞물려서 나오는 것이다. 최고의 사랑을 본 감상은, 누가 참 잘했다가 아니라 드라마를 참 잘만들었다에 가깝다. 모두가 참 잘했다는 뜻이다. 특히 그럴 수 없는 상황(생방촬영)에서 그런 작품이 나온다는 건 누구 하나가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모두가 잘했으니까 되는 거지.
개인적으로는 이야기 진행에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끝까지 밝으면서도 현실을 놓치지 않았고, 캐릭터도 변하지 않았다. 상황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계속 보게 만드는 건 어렵다. 백날천날 날선 비판을 해봐야 혼자 외치고 혼자 듣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나. 죽상을 하고 마음 가는대로 비평하는 건 쉽지만 문제를 제시하면서 재미있기는 힘들다. 남을 웃기는 건 힘든 일이고 거기에 문제 의식을 담는 건 더 힘들다. 최고의 사랑에서 보이는 이야기의 헛점은 대체로 자잘한 문제이다. 그런 문제는 중심 잡힌 이야기와 코메디와 풍자와 정극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확실한 장점으로 모두 상쇄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연출도 마찬가지다. 웃길 땐 확실히 웃겨주고, 진지할 땐 확실하게 진지하게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 웃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울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연출하고 편집하고 효과음을 넣고 음악을 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에 충실한 영상이 좋았다. 그저 세련되게 만들고 그저 예술적으로 만들고 시도때도 없이 롱테이크 잡고 시도때도 없이 분위기 잡아대며 해보고 싶었던 연출 들이대는 감독의 욕망에만 충실한 장면이 눈에 띄지 않는게 얼마나 좋으냔 말이다. 정말 좋은 연출은 연출력을 자랑하는 연출이 아니라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도 마찬가지고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우도 연기를 하는데, 이야기가 의도하는 바를 얼마나 잘 잡아내고 그대로 표현하는가에 중점을 두면 좋은 연기가 나온다. 작가도 배우를 염두하지 않고 캐릭터를 만들면 그만큼 배우가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럼 아무리 대본을 후벼파는 배우라고 해도 연기를 하는데 배는 힘들었을 것이고, 그럼 결과물이 이렇게 안 나왔겠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드라마는 캐릭터 위주로 쓰여진다. 보통 이야기는 크게 캐릭터 위주 혹은 사건 위주로 만들어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드라마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야기가 캐릭터 위주로 쓰여진다. 사건 위주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오히려 캐릭터 위주도 아니고 사건 위주도 아닌 분위기나 필력으로만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도 있다. 보통 캐릭터 위주로 이야기를 만들면 캐릭터를 견고하게 만들어 캐릭터를 이런 저런 사건에 뛰어들어 인물이 알아서 움직이게 만들고, 사건 위주로 이야기를 만들면 사건을 먼저 구축하고 결론을 만들어놓고 캐릭터를 거기에 끼워넣는 식이다. 추리소설에서 '범인이 사이코패스라 이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라고 하면서 사건을 뭉개버리는 건, 작가가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캐릭터 위주로 글을 써서 그렇다. 그리고 추리소설같은 장르는 캐릭터 위주로 글을 쓰기엔 그닥 좋은 장르가 아니다. 하지만, 감정 이입만 된다면 캐릭터 위주의 이야기가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하긴 하다. 그래서 추리소설에서 제일 성공한 작품이 강력한 캐릭터를 미는 셜록 홈즈인 거겠지.
홍자매는 캐릭터 위주로 글을 쓴다는 말을 많이 나오는 건, 홍자매만 캐릭터 위주로 글을 쓴다는 게 아니라 홍자매가 캐릭터 구축을 그만큼 잘한다는 이야기다. 캐릭터를 살리려면 캐릭터 배치도 잘해야 하는데, 홍자매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한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상호작용을 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이 캐릭터가 시시때때로 변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서 있으면서도 생동감을 주는 것. 멋있다. 누구나 캐릭터 위주의 이야기를 만들지만, 아무나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캐릭터가 강력한 것에 비해 사건이 약한 것(혹은 같은 사건이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강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최고의 사랑에서는 그 약점을 보완하는 갈등요소를 넣음으로써 더 좋아졌다.
독고진의 심장과 심장수술은 캐릭터를 위해 만들어진 설정이고 사건을 만들기 위한 요소로 보기엔 약하다. 최고의 사랑에서 어필하는 것은 죽음도 떼어놓지 못한 사랑이 아니라, 대중적 이미지(혹은 끕이 다름에)도 떼어놓지 못한 사랑이다. 이 한 가지 요소(설정)로 갈등을 만들고 역경을 만들고 사건을 만들었다. 우울하지 않게. 우울하지 않게! 난 그 점이 정말 좋다.
이런 설정으로 내가 글을 쓰면 구애정은 이미 자살했거나 아무 남자나 만나서 결혼했을 거다. 그런 사람을 많이 안다. 똥통을 힘들게 기어나와서 오줌통으로 기어들어가는 사람들. 지긋지긋한 삶들. 우울이 병이 되면 울지 않는다. 눈물이 흐르는 것도 정신이 있을 때지, 보통은 멍하게 있는다.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찡그리지도 않고 그냥 멍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라면 그런 걸 썼을 거다. 그리고 아무도 안 봤겠지.
독고진이 "구애정씨는 저에게 온 최고의 사랑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독고진이 구애정에게 온 최고의 사랑이다. 구애정이 맞는 것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독고진 밖에 없었고, 구애정이 욕 먹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도 독고진 밖에 없었다. 독고진은 가족도 없다. 생활감을 모두 배제한 그저 스타인 사람. 아무도 아닌 사람. 인터넷과 테레비에만 존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니까 당연히 구애정이 위로를 받을 수 밖에. 얼마나 많은 아줌마들이 자기만의 독고진을 테레비에서 찾나. 내 주변의 구애정들은 독고진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그래서 자살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최고의 사랑을 통해서 많은 걸 배웠다. 이야기를 밝게 쓰는 것에 대한 동경도 무럭무럭 키웠고.
난 PPL도 좋았다. 내가 아무리 반자본주의자라고 해도 드라마에 얼마나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지 잘 알고 있고, 자본이 부족할 때 누가 가장 피해를 보는지도 잘 알고 있다. 대놓고 몇초 비춰주는 것까지 해야하나 싶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PPL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게 아주 좋았다. 그것도 능력이다.
이미 많은 곳에서 배우의 연기에 대해 찬양을 하고 있기에 두 말 할 필요는 없지만! 차승원님 이야기 해야지. 최고의 사랑 보면서 생각한 건데 차승원은 외계인 같은 거 하면 진짜 잘할 것 같다. 닥터후의 닥터라던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의 우주 대통령 같은 역. 우리나라에서 저 역할 소화할 배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차승원은 아주 잘 할 것 같음. 일단 외양도 좀 외계인 같기도... 덧붙여 내가 배우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 내가 뭘 쓰면 당신을 배우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슈미다. 15년만 기둘려. 내가 죽이는 배역 줄테니. <-뭐 이런 마음? ㅋㅋ 그 전에 누가 차승원님의 턱 좀 돌려주세요ㅠㅠ 뒤로 갈수록 무서웠쪄ㅠㅠ
어쨌든 덕후는 외쿡에서 최고의 사랑 DVD를 기다립니다.
잘 만들어주세요. 굽실굽실.
별일없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