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경고임. 내가 생각해도 이 글은 한층 더 지랄 맞은 듯. 며칠 전에 써놓고 너무 쎈가 싶어서 자체 검열을 했던 거다. 보통 블로그에서 자체검열같은 거 절대 안하지만. 솔직히 자체검열이 필요할 정도로 세다고 생각하지도 않긴하다.
어쨌든 남에겐 읽기 싫을게 뻔하고, 나에겐 사실인 몇가지.
1. 꽃보다 남자 해적판(해적판 제목 오렌지 보이)이 들어온 그 시기(93년) 즈음부터 우리나라에 이지매라는 말이 돌았고,
대략 96년부터는 (IMF 직전) 뉴스에서 따돌림이라는 말이 돌았다.
이 이야기는 드라마 꽃남이야기 할 때 한 것이고. 어쨌든 2000년 초까지는 따돌림이 꽤나 큰 사회문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90년대 중반에 초, 중딩 이었던 애들의 따돌림 문제로 자살하는 애들도 있었고, 시사 다큐멘터리도 꽤나 많이 나왔지.
아싸라는 말이 있다.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재밌는 것은 아싸의 대부분은 자칭 아싸라는 것이다. 이 자칭 아싸의 특징은 대체로 다 같이 노는 것보다 혼자 노는 것 좋아하고, 약간 비주류의 취향이라고 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수성-쿨한 것 좋아하는 그런 감수성을 갖고 있다. 더 재밌는 점은? 이 아싸라는 말은 '대학 용어'이다. 대학에 다니는 애들이 하는 말. (특히 수도권 대학) 진짜 사회의 아웃사이더는 절대 지 입으로 아웃사이더라는 말을 안하지. 멀쩡히 in서울 대학 다니는 애들이 아싸라니 공고 나온 녀자는 웃어요....는 번외니까 접어두고.
어쨌든 뻔히 알던 문제를 이제서야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
한참 따돌림이 문제가 될 때의 그 친구들이 커서 아싸라는 말을 하는 세대와 동일하다. 그리고 지금 이 세대가 연약한 20대 운운하며 20대 비판론을 만들어냈지. 따돌림은 계속 된다. 쭈욱? 뭔가, 새삼스럽지만 놀랍다.
지금 20대의 대부분은 대중문화의 폭발력을 맛 본 세대다. 죽어도 안 된다던 일본문화개방도 대부분 현재 20의 청소년시기에 이뤄졌다. 누구보다 다양성 운운하는 시대에 살았지만, 왕따와 아싸라니. 왕따는 다른 사람을 구분해내는 말이고, 아싸는 스스로를 구분하는 말 아닌가. 사회가 진짜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나.
2. 내가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말을 하면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내가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부정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모양. 솔직히 생각보다 반응이 격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외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으로, 폭력 집회 시져요. 솔까 집회 자체도 별로야. (<-귀찮은 거겠지만.) 진보가 되려면 정당성을 가져야 하지. 그러니까 싸움은 안 되지. 신념을 굽히면 안되지...뭐 이런 소리 하는 사람도 많다.
좋아. 그래서? 언제 어떻게 권리를 주장할래? 몇년에 한번하는 투표? 라고 물었을 경우 나오는 말은,
'지지하는 NGO에 기부?' (물론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현재 지지하는 NGO에 기부하는 사람은 없음. 분명히 말하지만 전부 백수아님.)
여기 몇가지 딜레마가 있다.
0) 특정 NGO를 지지는 한다고 생각하나, 기부를 한다거나 자활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1) 정부에서 NGO를 상대도 안해준다. (NGO를 하청업체로 아는 행정부여...불법집회 또 하면 사업비 안줘 테크를 타는 행정부님)
2) (인간들 기부도 안하고, 정부에서 사업도 못 얻는다.) NGO는 돈이 없다. 권리도 권력도 없다. 여전히 행정부는 상대도 안해준다.
3) 행정부에서만 상대 안하주나? 보도자료 돌려도 보도하는 언론도 별로 없다.
4) 그나마 기부하는 사람들은 NGO단체 이 등신들 내가 기부까지 하는데 도대체 뭐하고 사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5) 소통의 창구가 없으면 길바닥에 나가는 수 밖에 없다.
6) 패턴은 늘 똑같다. 언제 나가든 불법집회가 되고, 그럼 진압 당하고, 뭔가 일은 해야겠고, 대항한다.
7) 지지하는 것들도, 평소 관심도 없는 것들도 '저것들 폭력집회 하네'라고 한다.
이건 뭐, 테러의 시작도 이렇다. 걔들이 처음부터 폭탄던지고 자살테러 했던 게 아니다. 시작은 전혀 달랐다고. 근데 저질러 놓고 보니 브레이크가 안 걸리는 거지. 누구 하나가 멈출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기본적인 대화도 하지 않으려는 상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쨌든 내가 궁금한 것 중에 하나는, 귀 닫고 입 닫은 정부도 아니고 집회하는 단체도 아니고, 스스로 보통 사람 혹은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왜 정부(강자)가 하는 민간인 살인은 용서받고, 운동권(약자)이 하는 폭력(살인도 있었다.)은 용서받지 못하는가. 96년 연대 사건 때문에 시민들이 등을 돌렸어. 어느 쪽으로? 정부 쪽으로? 그게 말이 되나?라고는 하지만 실제 있었던 일. 누가 더 잘못했네 더 잘했네 하는 문제가 아니라 똑같은 문제라는 거다. 누가 활동가의 발목을 잡는 것 같으냐. 저쪽 편 사람들? 정말 그런가? 잘 좀 생각해 봐.
어쨌든 욕하려면 똑같이 욕하라는 거고. 하려면 똑바로 하라는 거고. 기왕 하는 거면 끝까지 하라는 거고. 아니면 하다 못해 악착같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끝까지 하는 악이라도 보여주던가. 도대체 이도 저도 아니면서 '나는 진보에요' '나는 올발라요' '나 능력있어요'
무엇보다 '나 주권 갖고 있어요~'
진짜 자다가 하이킥하는 소리 하고 있네=_= 누가 권리를 거저 주던가. (애초에 권리나 자유라는 것이 철학적인 단어일 뿐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3. 수유너머구로에서는 구로에 사는 청소년을 위한 강좌를 연다.
구로는 공단이고, 성격상 못 사는 사람들이 많다. 방치 된 아이들도 많고. 조금만 관심을 둬도 아이들은 금방 변한다.
공고 나온 입장으로, 달동네 살아본 경험으로, 그다지 평범한 삶을 살아보지 않은 입장에서는(그러니까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수유너머구로 사람들이 그 아이들의 대할 때의 반응이나 그 아이들이 변화했을 때의 반응이 좀 이상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어쨌든 좋기도 하고. <-너머 연구소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공부 열심히하는 인문학적 의미의 범생이라서 그런 것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수도권 인문계 대학을 다녔다. 지방 출신도 많지만, 도시 빈민 출신은 못 본 것 같다.
어쨌든. 아이들은 조금만 관심을 줘도 금방 변한다. 물론 시간을 더 들여야 하는 아이들도 있지.
결과적으로 범죄자가 된 사람에 대해서는 나도 별로... 그런 새끼 구워 먹든 삶아 먹든, 감옥도 모자라는데 죽여도 별로 상관은 없지, 뭐. (라고 생각하지만 단지 '정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민을 죽일 수 없다'는 이유로 사형제도 반대.)
근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은 그렇다고 쳐도 지금 자라는 애들이 그렇게 되지 않게 해야하지 않겠어? 학교에서 따돌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애들이 만들어 내는 말이 아싸라고. 공간, 시대, 상황에서 자기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생각하나. 미친놈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근데 미친놈을 구별하는 것도 미친놈을 만드는 것도 사회다.
남미에 사는 애들이 중동에 사는 애들이 어린 나이에 테러 조직에 들어가는 이유는 거기 들어가면 굶지도 않고, 인정해주는 사람도 생기고, 이뻐해주는 사람도 생기고, 무엇보다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구질구질하게 살면서 타자화 된 삶을 살다가 폭력에 굴복하는 인간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겠지. 이런 아이들의 대두분은 밥 한끼 공짜로 제공하는 학비 없는 학교에 보내기만 해도 테러 조직으로 빠지진 않는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청소년에게 악기를 뿌리며 무료로 음악교육을 시켰다지. 풀타임 학교도 아니었다. 75년에 시작한 사업이 이제 빛을 보고 있으니 오래 걸린다. 교육은 가장 효과적이지만 가장 나중에 그 빛을 발한다. 하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게 쉽겠나.
4. Philip Larkin의 시.
they mess you up, your mom and dad.
they may not mean to but they do.
they fill you with the faults they had
and add some sxtra just for you.
해석하면,
그들이 너를 말아먹었어. 너의 엄마 아빠 말야.
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너를 말아먹었어.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너를 채우고
거기에 몇가지를 더 첨가했을 뿐이지.
뭐, 엄마 아빠 대신 사회를 넣어도 되고, 정부를 넣어도 된다.
나도 좀 심하다고 생각해서 참고 있었던 말 중에 하나는, (결국 이렇게 하고 말지만)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죽은 초딩의 부모도, 그 애를 사랑하긴 했을 걸. 결과적으론 그들이 죽였지만. 교육은 당장 교육을 받는 자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나 학생의 부모를 만족시키려고 할 뿐이고, 미래의 환경이야 어떻든 지금은 삽질을 하고 봐야겠다는 거지. 지금의 어른은-부모는, 사회는- 젊은 세대의 미래를 저당 잡고 살아가고 있다.
좋아. 뭐, 아이들은 더 이상 왕따로 자살하진 않는다. 대신 공부가 힘들어서 자살하지. 물론 이전에도 공부하기 힘들어서 죽는 애들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별로 없었다. 죽어도 끽해야 고삐리였지. 초-중딩이 그러진 않았다. 정 공부하기 싫으면 (혹은 사회에 대들고 싶으면) 싸우거나 본드를 부는 등 어쨌든 반항하거나 삐뚤어졌지. 실제로 '삐뚤어질테야!'하는 농담도 있지 않았나. 근데 요즘 애들은 죽어버리거나 그냥 견디는 것 같다. 좀 극단적이라는 생각 안 드나? 그래서 내가 요즘 궁금한 건, 이 공부만 한 애들이 크면 어떤 말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거다. 이 애들이 크면 어떤 사회가 되어 있고, 그 애들이 그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핵폭발 이후의 최후의 아이들에서는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빌어먹을 부모들' '천벌받을 부모들'이라고 한다.
5. 법정스님처럼 살고 싶지도 않으면서 법정스님 다큐멘터리 보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평소에 무소유를 개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으면서-그냥 나는 가족 때문에 혹은 여타 다른 이유로 남 탓하며 그렇게 사는 거라고 변명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왜 법정스님의 죽음에 이렇게 애도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가. 그게 좋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면 되잖아?
별일없이 산다